행정안전부는 지난 6월 15일 외국인용 재난안전 앱 '이머전시레디앱(Emergency Ready App)'의 지원 언어를 3개에서 22개로 늘렸다. 기존 영어·중국어·일본어에 러시아어, 네팔어, 아랍어 등이 추가됐다. 행안부는 이번 개편으로 국내 체류 외국인 약 287만 명 중 97%가 자신이 쓰는 언어로 재난·안전정보를 받을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개편 석 달이 지난 21일 현재 행안부 누리집의 안전디딤돌 안내 페이지는 이 앱을 설치하면 재난·안전정보를 영어와 중국어, 일본어로 확인할 수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 수원시 누리집에도 같은 문구가 그대로 올라 있다.
이 안내는 민간 정보에도 그대로 옮겨졌다. 외국인 대상 생활정보 사이트 서울스타트(Seoulstart)는 지난 8월 갱신한 재난문자 안내에서 1차 자료 13건을 검증했다고 밝혔지만, 이머전시레디앱의 정보 제공 언어는 영어·중국어·일본어로 적었다. 근거로 인용한 자료는 행안부 누리집이다.
자동 수신 재난문자는 여전히 한국어
97%는 앱을 설치했을 때 받을 수 있는 인구의 비율이다. 이머전시레디앱의 다국어 서비스는 이용자가 앱을 내려받고 언어를 설정해야 작동한다.
앱이 없는 휴대전화로 자동 수신되는 재난문자는 한국어 본문이 기본이다. 행안부는 2024년 2월부터 경보음이 울리는 위급·긴급재난문자에 한해 '지진(Earthquake)', '호우(Heavy rain)'처럼 재난 유형 등 핵심 단어만 영어로 함께 표기하고 있다. 경보음이 없는 안전안내문자에는 이마저도 붙지 않는다.
행안부는 당시 본문 전체를 이중언어로 보내지 않는 이유로 문자 글자 수 제한이 짧고 재난문자 과다 발송 민원이 있다는 점을 들었다. 이후 행안부는 2025년 2월 재난문자방송 운영협의회에서 재난문자 글자 수를 90자에서 157자로 늘리고, 그해 일부 지자체 시범 운영을 거쳐 올해 전국으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글자 수 제약은 완화되는 쪽으로 가고 있지만, 자동 수신 문자의 외국어 표기는 영문 핵심 단어에 머물러 있다.
1345 이용, 언어권별로 크게 갈려
본지는 법무부가 공공데이터포털에 공개한 외국인종합안내센터(1345) 상담 통계를 분석했다. 1345는 재한외국인처우기본법에 따라 법무부가 운영하는 상담 창구로, 한국어를 포함해 20개 언어로 상담한다. 재난 전용 창구는 아니지만 공공 다국어 서비스의 실제 이용량을 언어별로 확인할 수 있는 공개 자료다.
지난해 1345 상담원 연결은 모두 307만 601건이다. 이를 법무부가 집계한 지난해 말 국적별 체류외국인 수와 비교했다.
베트남어 상담은 17만 9163건으로, 베트남 국적 체류자 33만 7183명과 견주면 1.9명당 1건꼴이다. 중국어는 28만 2816건으로 중국 국적 체류자 98만 670명 기준 3.5명당 1건이다. 태국어는 6427건으로 태국 국적 체류자 16만 9848명 기준 26.4명당 1건에 그쳤다. 태국은 체류외국인 국적 4위지만 1인당 상담 이용량은 베트남의 14분의 1 수준이다.
2024년과 비교하면 우루두어(82.7%), 크메르어(67.7%), 싱할리어(63.5%), 미얀마어(55.5%), 네팔어(52.4%) 상담이 크게 늘었다. 러시아어는 43.6%, 중국어는 18.6% 줄었고 태국어도 1.5% 감소했다.
이 수치를 언어별 정보 접근성으로 바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상담 건수는 체류자격 구성과 민원 수요, 체류 기간에 따라 달라진다. 중국 국적 체류자에는 한국어를 쓰는 한국계 중국인도 포함돼 있다. 러시아어와 중국어 상담이 줄어든 원인도 이 자료로는 확인되지 않는다.
태국어 통역, 있어도 없다고 느낀다
본지가 만난 태국 출신 A씨는 다문화 관련 기관에서 통번역 일을 했다. 그는 그 일을 하면서 1345를 알게 됐다고 했다. A씨는 한국에 사는 태국인 대부분이 정부기관에 전화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고, 그 이유는 언어라고 말했다. 태국어 통역이 잘 없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1345는 태국어 상담을 제공한다. 태국 외교부 영사국도 2023년 2월 한국 내 미등록 체류 자국민에게 자진 출국을 안내하면서 문의처로 1345를 소개하고 태국어 통역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태국 현지 매체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태국 방송사 Ch3는 한국에 사는 태국인을 대신해 출입국 당국에 신고 전화를 걸어주는 대행업자를 보도하면서, 한국 내 태국인들은 의사소통이 안 될까 봐 1345에 직접 전화하기를 꺼린다는 이 업자의 말을 전했다.
체류 형태도 다르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 통계월보에 따르면 올해 7월 말 국내 체류 태국인은 15만 6798명이고, 이 가운데 70.4%인 11만 382명이 단기체류 외국인이다. 국적별 미등록 체류 수치가 공개된 가장 최근 자료인 2024년 10월 말 기준으로는 국내 체류 태국인 19만 171명 중 74%인 14만 122명이 미등록 상태였다고 법무부 서울출입국·외국인청은 밝혔다. 전체 미등록 체류 외국인은 올해 7월 말 34만 4999명으로 1년 전보다 7.8% 줄었다.
태국 매체 더101(The101.world)에 2023년 실린 현장 연구는 한국 내 태국인 미등록 체류의 원인으로 고용허가제(EPS)의 인력 할당 부족과 이를 묵인하는 고용 관행을 꼽았다.
다만 A씨가 이유로 든 것은 체류자격이 아니라 언어였다.
번호 하나 알렸더니 신고 6배
안내 방식이 이용을 바꾼 사례는 1345 안에 있다. 법무부는 지난 5월 27일 1345에 외국인 인권침해 전용 신고번호를 신설했다. 1345로 전화해 1번을 누르면 20개 언어 상담사에게 바로 연결된다.
법무부에 따르면 신설 이전 월평균 22건이던 인권침해 신고는 신설 이후 월평균 142건으로 늘었다. 6배가 넘는 증가다.
일본 '쉬운 일본어'
일본은 1995년 한신·아와지 대지진 당시 외국인 주민들이 대피소와 생활 정보를 이해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는 조사 결과를 계기로 '쉬운 일본어(야사시이 니혼고)'를 도입했다. 외국어 번역을 늘리는 대신 원문을 쉬운 말로 바꾸는 방식이다. '여진'을 '나중에 오는 지진'으로, '급수차'를 '물을 실은 차'로 쓰는 식이다.
국내 체류외국인은 지난해 말 278만 3247명으로 1년 새 5.0% 늘었고, 올해 7월 말에는 290만 3463명으로 290만 명을 넘었다. 국적 구성도 계속 다양해지고 있다.
누리집 안내부터 바로잡아야
이머전시레디앱 22개 언어, 1345 20개 언어 상담은 이미 운영되고 있다. 이를 당사자가 알지 못하면 이용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은 1345 인권침해 신고번호 사례에서 확인됐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정부 누리집 안내를 개편 내용에 맞게 고치는 것이다. 이어 이주민이 실제로 정보를 얻는 모국어 매체와 공동체를 통해 서비스를 알리는 일이 필요하다. 태국어권처럼 통역이 있는데도 없다고 여기는 경우라면, 태국어로 상담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부터가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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