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다문화뉴스 강성혁, 소해련, 김관섭 기자 | “이제 외국인 없으면 공사는 어렵다. 그런데 제도는 아직까지 모르겠다.” 경기도의 한 산업단지 현장에서 만난 반장의 말이었다. 행정안전부의 2023년 통계에 따르면 경기도는 전국 외국인주민의 4분의 1이 넘는 약 81만 명이 거주하는 한국 다문화사회의 중심지다. 그러나 정책의 언어는 여전히 ‘복지’와 ‘관리’에 머물러 있다.
한국다문화뉴스 취재팀은 지난 6개월 동안 캐나다·싱가포르·부산·울진 등 국내외 현장을 오가며 이주노동자와 선주민이 공존하는 구조를 추적했다. 그리고 그 결과를 경기도에 전달하며 물었다.
현장 중심으로 바뀐 산업, 제도는 여전히 과거형
안산의 공단, 평택의 제조라인, 화성의 공사현장. 경기도의 주요 산업현장은 이미 다문화 노동력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공식적인 업무 언어는 한국어이지만 작업 중에는 국적이 다른 노동자들끼리 중국어, 베트남어, 우즈베크어, 타갈로그어 등 여러 언어가 뒤섞이는 비공식 다언어 소통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일터의 공기는 이미 다문화적이다.
그러나 제도는 여전히 과거형이다. 언어 장벽, 안전사고, 숙소 환경, 체불 문제는 현장마다 반복되고 있다. 한 다문화센터 관계자는 “이주민을 돕는 복지 중심 접근이 아니라 노동 구조 자체를 조정하는 제도 중심 접근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현장은 이미 다문화사회로 들어왔는데, 제도는 입구에서 멈춰 있다”고 말했다.
캐나다 현장, 관리가 통제가 아닌 신뢰의 장치가 될 때
캐나다의 건설현장은 이민노동으로 유지된다. 토론토 등지에서는 2차대전 이후 포르투갈·이탈리아·아일랜드계 이민자들이 도시 건설의 주력 인력으로 참여한 기록이 다수 남아 있다. 오늘날에는 국적 구성이 훨씬 다양해졌지만 이민노동자 네트워크가 현장의 조직 단위로 작동한다는 점은 여전하다.
캐나다의 임시외국인근로자제도(TFWP)는 고용주에게 종속되는 폐쇄형 퍼밋 형태였으나 남용과 착취 논란 이후 변화가 시작됐다. 2025년 3월 7일, 캐나다 연방정부는 최대 6,000명 규모의 미등록 건설노동자에게 정규화 경로를 제공하겠다는 도입 의사를 발표했다. 이는 제도권 밖 노동자를 제도 안으로 포섭하려는 상징적 조치였다.
2024년 기준 전체 워크퍼밋의 약 20%만이 TFWP이며 대다수는 오픈 퍼밋이 포함된 국제이동프로그램(IMP) 형태로 전환됐다. 유엔 특별보고관이 “TFWP는 현대판 강제노동의 위험을 내포한다”고 지적한 이후 캐나다 정부는 감독 강화와 권익 보장 병행을 방향으로 삼았다.
즉, 캐나다는 폐쇄형 제도의 한계를 개선하며 노동자의 권익을 제도적으로 보장해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려는 흐름을 보여준다. 다문화를 통제 아닌 신뢰의 정책 언어로 번역한 사례다.
싱가포르의 현장, 외국인 고용을 정책으로 설계하다
싱가포르는 외국인 노동을 국가 경쟁력의 일부로 보되 고용 비율을 세밀히 관리한다. 정부는 산업별 쿼터(외국인 비율 상한)와 레비(고용세) 제도를 통해 내국인 고용을 보호하면서도 숙련 이주노동자 유입을 유지한다.
서비스업의 경우 전체 인력의 35%를 초과해 외국인을 고용할 수 없고 제조업은 60%, 건설업은 83.3%까지로 제한된다. 고용주는 매월 레비를 납부해야 하며 싱가포르 노동부(MOM)는 이를 ‘공존형 노동시장 관리’로 정의한다.
즉, 싱가포르는 내국인 보호와 외국인 활용의 균형을 제도적으로 설계한 모델이다. 다문화는 복지가 아니라 경제정책의 일부이며 균형 잡힌 관리 시스템이 곧 사회적 지속성을 지탱한다.

경기도 현장, 따라가는 제도와 분명한 방향성
경기도청 관계자는 “이주민과 고용주, 그리고 기관이 함께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하고, 정책이 현장에서 피드백을 받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며 “경기도는 전국 최초로 이민사회국을 신설했고 외국인주민 통합지원센터를 확충해 다국어 상담과 체류 지원을 강화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주노동자의 권익 보호를 위해 이주노동자 행복일터 선정사업, 노후 쉼터 리모델링, 작업장 환경 개선 지원 등 현장 맞춤형 사업을 함께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언어 장벽 해소를 위해 22개 기관과 함께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이주배경 도민 인권보장 조례’를 제정해 인종차별과 차별행위를 방지하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고 덧붙였다.

경기도의회 최민 의원도 “외국인을 단순한 노동인력이 아닌 지역사회 구성원으로 바라보는 정책 전환이 절실하다”고 강조하며, 광역형 정책 체계 강화와 이민사회 대응 전략 마련을 주문했다.
캐나다는 신뢰를 제도화해 노동자와 정부 간 협력 구조를 만들었고 싱가포르는 균형을 제도화해 내국인과 외국인이 공존할 수 있는 질서를 세웠다. 이주노동자를 단순한 노동력이 아닌 지역 공동체의 일원으로 제도적으로 포함시키는 방식 그리고 내국인과 충돌이 아닌 협력의 구조로 이어지도록 설계하는 방식을 지속적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
* 강성혁, 김관섭, 소해련 기자 sdjeb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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