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노동자를 집중적으로 고용하는 취약사업장을 대상으로 정부가 실시한 근로감독에서 10곳 중 9곳이 넘는 사업장에서 법 위반이 적발됐다. 임금체불 규모만 17억 원에 달하고, 외국인 노동자의 머리를 때리는 폭행 사례까지 확인되면서, 고용허가제 20년을 앞둔 한국 노동현장의 민낯이 다시 한 번 드러났다.
고용노동부는 외국인 고용 취약사업장 196곳을 대상으로 올해 4~6월과 9월, 두 차례에 걸쳐 집중 근로감독을 실시한 결과를 11월 19일 발표했다. 감독 결과 전체의 약 93%에 해당하는 182개 사업장에서 총 846건의 노동관계법 및 외국인고용법 위반 사항이 적발됐다.
가장 두드러진 문제는 임금체불이다. 123개 사업장에서 16억 9,900만 원 규모의 임금체불이 드러났고, 상당수는 경영상 어려움을 이유로 내·외국인 노동자의 임금과 수당을 아예 지급하지 않거나 법정 기준보다 적게 지급한 사례였다. 강원도의 한 제조업체는 수개월 동안 임금 1억 1,000만 원을 지급하지 않아 장기 체불로 판단됐고, 시정 지시에 응하지 않아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노동시간과 휴식 보장도 크게 흔들려 있었다. 65개소에서는 법정 기준을 넘는 장시간 노동이 확인됐고, 22개소에서는 휴게시간이나 휴일을 제대로 부여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일부 사업장은 연장·야간·휴일 근로수당을 지급하지 않은 채 사실상 ‘무제한 노동’을 강요한 것으로 조사됐다.
더 심각한 것은 물리적 폭력과 차별이다. 근로감독 과정에서 10개 사업장에서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폭행과 국적을 이유로 한 차별적 처우가 적발됐다. 한 사업장 관리자는 제품 불량과 안전 수칙 위반을 문제 삼는다며 외국인 노동자의 머리를 손으로 폭행한 사실이 드러났고, 해당 사건은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입건돼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됐다.
또 다른 사업장들에서는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는 내국인에게만 정기상여금, 법정 연차휴가, 하계휴가비를 지급하고, 외국인 노동자에게는 지급하지 않은 사례도 확인됐다. 고용노동부는 국적을 이유로 임금·휴가 등에서 차별을 두는 행위는 근로기준법상 명백한 위법이라고 밝혔다.
출국만기보험 등 의무 가입보험에 가입하지 않거나 보험료를 연체한 사례도 40여 건에 이르렀다. 기숙사 시설 기준을 지키지 않거나, 기숙사 관련 정보를 사전에 제공하지 않은 사업장, 근로계약서에 명시되지 않은 다른 사업장에서 노동자를 근무하게 한 사례 역시 적발 명단에 포함됐다.
이번 감독에서 적발된 위반 행위 846건 가운데 844건은 시정지시를 받았고, 폭행과 장기 임금체불 등 중대한 위반이 확인된 2개 사업장은 검찰에 송치됐다. 고용노동부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폭행과 차별적 처우에 대해서는 무관용 원칙으로 엄정 대응하겠다”며 추가 감독과 제도 개선을 예고했다.
문제는 이러한 집중 감독이 일회성으로 반복되는 사이, 구조적 문제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이주노동자가 언어·정보 격차와 3D 업종 집중 등으로 인해 일반 노동자보다 산업재해와 노동착취 위험이 더 높다고 지적해 왔다.
한국 역시 제조업·농축산·건설·어업 등 인력난이 심한 업종을 중심으로 외국인 노동자 의존도가 빠르게 높아지고 있지만, 그에 걸맞은 권익 보호 장치는 여전히 취약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감독 결과는 두 가지 질문을 남긴다. 첫째, 고용노동부가 취약사업장을 선별해 집중 감독에 나설 정도로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했음에도, 감독 대상 사업장의 90%가 넘는 곳에서 위법행위가 적발됐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둘째, 이렇게 반복되는 위반을 근본적으로 줄일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충분한가 하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반복되는 임금체불과 폭력·차별을 줄이기 위해서는 단속 강화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 이주노동자가 장시간 노동과 임금체불, 폭력 피해를 겪더라도 체류 자격과 재고용에 대한 불안 때문에 문제 제기를 주저하는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위법행위는 음지에서 계속 누적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외국인 고용 쿼터를 늘리고 산업 현장의 인력난을 숨 급히 메우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임금·노동시간·산재·기숙사 등 기본적인 노동조건을 지키는 것이 “경쟁력이 떨어지는 비용”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책임져야 할 최소한의 기준이라는 인식이 정책과 현장 모두에서 분명해져야 한다.
이번 근로감독 결과는 외국인 노동자를 둘러싼 취약한 노동조건이 더 이상 일부 사업장의 예외적 사례가 아니라는 사실을 수치로 보여준다. 이제 필요한 것은 “또 한 번의 집중 감독”이 아니라, 위반 사업장에 대한 실질적인 제재와 함께, 피해 노동자가 불이익 없이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구조를 설계하는 일이다. 반복되는 숫자 뒤에 있는 현실을 바꾸지 못한다면, 1년 뒤, 3년 뒤 발표될 통계도 크게 다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